사이버 암호들: 선우 훈의 예술에 있어서 픽셀, 사람들, 참여와 정치 심 수민
심 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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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서울
나는 서울에서 자라났으므로 광화문 광장 근처의 서울 시내를 정기적으로 자주 방문했다. 그곳은 흔히 사진 촬영을 하는 소수의 관광객을 제외하고 서울 시민들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기로 2002년에는 광장 주변의 거리들이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FIFA월드컵에서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소위 “자이언트 킬러”라고 불리는 의외의 승리를 응원하는 붉은 옷을 입은 열정적인 수 만 명의 응원 인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사실 그 당시 열 세 살이었던 한국의 예술가 선우 훈은 그 축하 인파의 사람들 중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국가의 권위와 저항과 연관된 이 장소가 시끄러운 축제와 페스티벌의 장소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광화문에서가 아닐지라도 나는 내 사촌들과 웹툰을 읽을 수 있는 컴퓨터에 심취되어 있었다. 세로로 길다란 만화가 온라인으로 출판되었고 아래로 스크롤 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나의 모니터에 달라붙어서 나의 첫 번 째 사교적인 상호작용은 상세하게 묘사된 사이버 풍경에 생활하고 존재하는 픽셀로 만들어진 사람들과 이루어졌다. 그곳은 웹과 물리적인 사이트가 혼동되는 곳이었다.
2017년 서울
15년이 지난 겨울 내가 돌아왔을 때, 광화문은 고동치고 있었고 인근의 길거리 마다 눈이 덮여있고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 사람들은 붉은 옷을 입고 있지 않았지만 대신 카나리아 노란색 리본을 달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 한 손에는 촛불을 다른 한 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열광하던 스포츠의 함성은 십 만 명이 넘는 애도하는 사람들의 엄숙한 침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사람들은 3년 전에 발생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있었는데 진도 인근 해역에서 페리가 전복된 이 사고는 304명 승객의 사망을 초래했고 이 중 사분의 삼 이상의 승객이 학생이었다. 광화문에는 천막이 줄지어 있었는데 그 중앙에는 목에 교수형 밧줄을 건 종이로 만든 박근혜 대통령의 형상이 있었다. 몇 가지 부패 정치 스캔들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늦은 대응이 지도자로서의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함의 증거로 제시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었다.
집결한 사람들은 모두 광화문 광장의 북쪽에 접해 있는 광화문 쪽을 바라보았고 사진 촬영을 하고 전화기로 가상공간에서 공동으로 연결되어 있는 카카오 톡 메시지를 보냈다. 또 다시 선우훈은 그 날 밤 광장에 모인 많은 얼굴들 중에 하나였으며 청와대와 하늘을 슬픔에 빠져 바라보았다. 사람 들은 국민적인 자부심으로 뭉쳐 모인 것이 아니라 비탄과 기억과 분노로 모였다. 광화문과 같은 공공의 공간은 국가의 공유된 경험의 무대로 존재했고 국가의 집단적인 역사적 비판으로 취합된 국민의 열망과 비탄의 이야기를 방송하고 있었다. 이러한 군중 집회는 국가적인 광경으로 국가의 본체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군중 들 안에 서 있으면서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심오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러한 군중 사이를 힘겹게 걸어서 나는 광화문에서 걸어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에 도착했다. 여기가 내가 처음으로 선우훈이 설치한 <Flat is the New Deep> (2017-)을 만난 곳이다. 웹툰 양식으로 창조되어 길다란 세로 모니터에 설치된 작품을 나는 아래로 스크롤 해서 내려 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하나의 픽셀로 시작하여 픽셀이 계속 복합 확대되어 가면서 한국 정치사의 주요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었다. 즉시 나는 나의 삶의 경험들이 이러한 등각도 구조와 개별적인 픽셀들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2002년 월드컵 축제도 보았고 세월호 참사의 항의 집회도 보았으며 박근혜 반대 데모의 많은 인파도 보았다. 이렇게 익숙한 거리에서 나의 취합된 주관적인 기억을 보면서 나는 내 추억의 메아리를 저장하고 수집해 둔 장소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사학자 피에르 노라는 다음과 같이 말 한 바 있다, “기억은 장소에 집중하고 역사는 사건에 집중한다.”(1) 선우훈의 작품은 물리적인 것과 가상적인 것을 혼합시킴으로써 장소들과 사건들을 비늘처럼 겹쳐지게 한 기억과 역사의 저장소이다. 선우훈은 건축학적 공간을 표현함에 있어서 (아파트나 오피스 건물 등과 같은) 물리적 공간들은 네이버와 야후 코리아의 확대된 웹 페이지에 의해 구분 시키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시켰다. 마찬가지로 내가 서울에 있을 때 그 도시가 집합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각각의 구역에는 서로 다른 역사와 성격과 병리적 현상의 가시적인 표식이 존재하며 고급화와 전쟁과 산업화의 다층적 구조가 존재하고 있다. 공간 그 자체는 여러 가지 소리가 합성되어 있는 것으로 다층적 불협화음으로 (polyphonic, a layered cacophony) 해석된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또한 동일하다. 이러한 경쟁적인 복수의 층과 이미지의 병렬은 하나의 조각 (a single strip)으로 압축되어 한국을 모형 (Simulacra)으로 표현해 준다.
그렇다면 쉽게 말해 선우훈은 한국사를 지역화된 웹툰의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웹툰이라는 용어 자체는 한국에서 2000년대 초에 만들어진 웹 (Web)과 만화 (Cartoon)의 합성어이다. 2017년 현재 7,240억 원 (호주 달러로 환산할 때 약 8억 9천 9백만 호주 달러) 규모 (2)의 웹툰 산업은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산업이다. 웹툰은 본래 민주적인 형식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처음 새로운 디지털 컨텐츠로 소개되었을 때 웹툰은 많은 배급 경로를 피하여 소개되었기 때문이며 인터넷이 예술적 자유의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웹툰을 강력한 비주얼 언어 도구로 본다면 웹툰은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공유하고 논평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일종의 사회학적 상상의 디바이스로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웹툰은 선우훈으로 하여금 사회학적 행동과 공공의 공간으로 담론적으로 뛰어들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인 것이다. 선우훈은 이러한 매체의 국지성을 인식하여 다음과 같이 말 하고 있다. “한국 웹툰의 장르는 특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웹툰을 그릴 때 마음 속에 커다란 모니터를 상정하고 그리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휴대용 전화로 본다. 웹툰은 모바일 환경에서 언제나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것이다.”(3)
언제나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 연결이 잘 되어 있는 나라이며 가장 무선 연결이 잘 돼있고 또한 적어도 2017년 이래로 가장 평균 속도가 빠른 인터넷 연결을 가진 나라라고 한다.(4) 웹툰 디지털 문화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온라인 만화 시장의 빠른 성장률은 모바일 기기의 보다 높은 보급률에 기인하고 있다고 한다. (5) 2009년 스마트폰의 광범위한 보급과 그 직후 iPhone의 인기 상승으로 말미암아 선우훈은 스마트폰을 예술의 형식으로 뿐만 아니라 기술이 인식과 존재를 변화시키게 되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서 즉시 조사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선우훈은 2014년에 다음 (Daum)에 출판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손상 (his webtoon Damage Over Time published on Daum)이라는 웹툰을 시작으로 웹툰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선우훈은 군대 복무기간을 통하여 민주주의와 정치와 사회 정의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더욱 키워가게 되었다. 선우훈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2009년-2011년 기간 중에 일찍이 웹툰 양식을 실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 작품은 제가 군대에 의무 복무하던 때에 시작되었습니다. 군 복무 기간 중에 저는 자유로운 시간을 많이 낼 수 있었고 낡은 컴퓨터가 있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 페인트 소프트웨어로 그림들을 계속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군 부대에서는 누구도 USB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대령의 운전병이 되었던 2011년 2월부터 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주된 임무는 대령의 방문자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일이었고 제가 있던 사무실에는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은 낡은 컴퓨터가 한 대 있었습니다. 저는 마이크로소프트 페인트 툴로 이런 저런 것들을 끄적거렸는데 제가 운전하던 자동차들도 그려보고 전투복을 입은 군인들도 그렸습니다.
선도적인 디지털 도시로서의 서울의 지위를 고려하고 기술이 우리의 세상을 걸러내고 우리의 시각을 걸러내는 방식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은 탐구를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하며 선우훈이 대담을 통해서 필자에게 말 했듯이 그는 ‘미디어에 나타난 이미지의 변화를 알아차렸던 것’이다. <Flat is the New Deep>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유세 벽보 그림을 보여주는 거대한 iPhone이 크게 부각되면서 사이버 공간은 결국에는 물리적인 공간을 추월하게 된다. 선우훈의 웹툰의 한 장면에서 데모 군중들은 서울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고층 아파트 건물의 옥상에서 iPhone의 그늘로 가려질 때까지 계속 서 있다. 선우훈은 휴대용 전화기가 없는 상태를 무서워하는 휴대용 전화 부재 공포증의 증가와 더불어 사람들은 서로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을 때보다 디지털 형식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물리적인 건축물이 우리의 활동을 통제하는 것처럼 온라인 공간은 우리의 가상적인 움직임과 행동을 통제하며 적극적으로 공공의 인식을 형성시키게 된다. 사실 박근혜 자신의 모습이 작품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선우훈은 박근혜의 묘사가 TV 출현이나, 뉴스의 헤드라인이나 선거 운동 사진을 통해서만 박근혜가 다시 제시되는 여러 가지 방법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18년 광주
서울에 이어서 다음으로 나는 광주를 방문했다. 광주는 (1979-1988) 전두환 독재 정권 하에서 발생했던 1908년 광주 학살로 가장 유명한 도시이다. 우리 부모님들께서는 1980년에 대해서 자주 이렇게 회고하시면서 말씀하신다; 대학교들은 휴교령으로 폐쇄되었고 경찰이 진입한 강의실들은 최루탄으로 가득했으며 학생들과 데모 군중들은 체포되고 구타 당했다. 광주 항쟁은 보통 한국 민주주의의 시작으로 간주되는 민중 운동의 한 부문으로 이해되는데 민중이라는 단어는 ‘군중’ 혹은 ‘국민’이라고 해석된다. <Flat is the New Deep> 작품은 이 순간을 시작점으로 선택하고 있는데 선우훈은 ‘공공의 광장이 1987년 이후 안전하고 즐거운 장소로 한국에서 변화하였는가를 보여 주고 싶어했다.’ 2018년 필자가 두 번째로 그 작품을 보게 되었을 때는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되어 있었다. 인간의 상상으로 형성된 경계 (Imagined Borders)를 주제로 한 작년 비엔날레는 장소적 특수성에 집중하여 한국 국내 역사와 광주에서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집단적인 기억을 조망하였는데 전시장의 한 지역을 모두 광주에서의 정치적 폭력에 할애한 ‘생존의 예술’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비엔날레 그 자체는 민중 운동과 학살을 기억하기 위해 1995년 창설되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선우훈의 작품은 민중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선우훈의 여러 소리가 합성되어 있는 색채와 웹툰의 미학은 적어도 피상적으로는 자유를 향한 폭력적 투쟁의 상식적인 장면과는 모순되는 듯 보일 지 모르지만 광주에서 발표된 선우훈의 작품은 정치적 개혁의 시급함과 요구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선우훈에 있어서 픽셀은 민주주의를 향한 비유이며 집단 속에서 개인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것은 집결되어 정치적인 힘이 되는 개별적인 시민의 권력을 우선으로 하는 민중에 의해 포착되는 이상주의를 모사하는 것이다.
광주 학살 이후 39년이 지난 지금 민중은 이와 같은 기술 집약적인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가장 비우회적이며 직접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적 투쟁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기술이 동원되었다. 한국의 2000년대 초, 늘어나는 정당 간의 담합과 기득권을 가진 뉴스 미디어는 2000년 2월에 창립된 오마이뉴스와 같은 인터넷 기반 언론의 성장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러한 플랫폼에 기초하여 일상적으로 시민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자유롭게 출판하고 발표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사치스러워 보이는 혜택은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누릴 수 없던 것이었다. 1980년 우리 부모님들이 동원했던 방식들과 2019년 필자가 동원할 수 있는 방식은 엄청나게 다른 것이다. 한국의 뉴스 미디어는 군부 정권의 군법에 의해서 통제되었고 오로지 지역적인 뉴스만 접근할 수 있었던 그 당시에 광주 학살의 소식은 천천히 우리 부모님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고 구전을 통해서 알려지고 있었다. 반면에 필자의 지금의 현실은 뉴스는 즉시 한 나라의 국경을 넘어서 퍼져나가는데 이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필자와의 대화 과정에서 선우훈은 특별히 노동조합의 지도자였던 김진숙과 2011년 부산에서의 군중 데모 당시 김진숙이 사용한 트위터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한 바 있다. 김진숙은 부산 소재 조선소의 35미터 고층 크레인에서 약 1년 간의 기간을 생활하였는데 이것은 1937년 한국에서 설립된 한진 중공업이라는 다국적 조선 회사에 대해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한진 중공업은 한국과 필리핀에서의 대량 해고 이후 많은 노동자들의 파업에 직면하고 있었다. 김진숙은 트위터를 통하여 고층 크레인의 기사작업공간에서의 자신의 매일 매일의 일상 생활을 알리면서 항의하는 메시지를 일반 대중 들에게 보냈던 것이다. 사람들은 희망 버스라고 이름 붙여진 버스를 타고 김진숙이 항의하고 있는 현장에 방문을 하는 것으로 반응하게 되었으며 2014년과 2015년에 선우훈과 다른 예술인들은 김진숙을 지원하는 예술제 (arranged festivals in support of Kim)를 마련했다. 선우훈은 대학교 재학 중 김진숙을 처음 만났다. ‘제가 병역 의무를 마치고 제대한 후 저는 만화가로 대학교 신문사에 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노동 운동가인 김진숙과의 대담에 참석한 대학 재학 당시 저는 사회적인 쟁점들을 제 예술 작품으로 표현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우훈은 이 때 이전에도 정치적으로 활동적이지는 않았지만 항상 정치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1989년 서울에서 출생한 선우훈은 그가 열 살 되던 때에 부친상을 당하게 되고 모친이 출생하고 성장한 고향으로 인구 십 만 명의 정읍이라는 한국의 도시로 이주하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생모와 계부와 조모, 자매 들과 함께 살았다. 선우훈은 다음과 같이 좀 더 자세하게 그 당시를 말한다:
저의 계부께서는 버스 운전을 하셨고 모친께서는 동네 공장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지방에서 노동 계급을 기초로 한 재혼 가정의 배경은 저에게 사회적으로 주변인이라는 의식을 주게 되었는데 특히 제가 예술 대학교에 입학해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명문 예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고 그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하게 된 이후에 그러한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광화문
나는 서울에서 할머니와 함께 있었는데 할머니는 나에게 끊임없이 서울에서는 공중 화장실을 사용하지 말 것을 상기시켜주셨다. 할머니의 보수적인 걱정에 대해서 불평을 하면서도 나는 할머니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광화문 역의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여자 화장실의 거의 모든 문과 벽과 구석구석에 몰래 카메라, 줄여서 몰카 금지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몰래 카메라는 스파이캠 (SpyCam)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1 밀리미터 렌즈가 부착된 이 카메라들은 화장실이나 탈의실이나 모텔과 같은 공공 장소에 숨겨져 있는데 여자를 촬영해서 배포되거나 실시간 온라인 스트림으로 방송된다. 2017년에 거의 6,500건의 몰카 범죄가 경찰에 신고된 바 있다. (6)
광화문이 다시 사람들로 완전히 메워지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대부분의 시위 군중이 여성이었고 몰카 반대 군중 집회였다. 또 다시 군중들은 그들의 전화기로 군중 집회 뉴스를 공유하였고 광화문 광장은 온통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들이 울리고 있었다. 내가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한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스마트폰은 사진 촬영 시 이렇게 커다란 셔터 소리가 나도록 의무화되어 있는데 이것은 몰카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서 소위 여자 치마 속 카메라 찍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였다. 군중 집회 시위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적어서 들고 있었다. ‘내 인생이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여성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선우훈은 미투 운동에서 2015년 후반기 설립된 페미니스트 인터넷 그룹인 메갈리아에 이르는 이와 같은 지속적인 한국 여성들의 투쟁을 표현해 오고 있는 바, 이러한 구호는 선우훈의 <Flat is the New Deep>에 다시 복제된다. 메갈리아는 유저들로 하여금 익명으로 극단적인 페미니스트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을 허용하는 논란이 많은 페미니스트 온라인 포럼이다. 선우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군대 생활은 고통스러웠고 저의 웹툰 시리즈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군대의 과도하게 남성적인 문화에 대한 나의 증오심은 제 작품을 만드는 모티브가 되었으며 제가 대학교에서 수강한 페미니즘 과목은 저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저는 항상 제 자신을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제 자신의 성 (Gender)이 일종의 혜택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저에게는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선우훈은 추가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웹툰의 세계에서 웹툰 예술가들은 여권 운동가들 (페미니스트)을 응원하기 위해서 메갈리아의 심볼을 붙인 티셔츠를 만들었다:
메갈리아는 운영을 하기 위해서 크라우드 펀딩에 의존했으며 메갈리아 그룹에 기부를 한 여자 분들 중의 한 분은 온라인으로 자신의 메갈리아에 대한 지지를 올렸는데 이로 인해 남성 게임 선수들로부터 심한 항의를 받게 되었고 자신의 고용주인 비디오 게임 제작 업체 넥슨으로부터 해고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주로 남성 지배적이었던 게임업계에서 남성과 여성 간의 심각한 분쟁을 야기시키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또한 넥슨 사옥 건물 앞에서의 시위를 야기시키게 되었고 사람들은‘여자에게는 왕자가 필요 없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를 담은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많은 여성 웹툰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반발은 진실로 현재 한국이 새로운 사이버 정치의 선봉에 휘말려 있는 정도를 보여준다. 웹 공간이 인식을 전파시키고 지식을 공유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만큼 그것은 또한 왕따와 명예 훼손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선우훈의 웹툰 작품을 내려가면서 관람하면 중간 정도 쯤에 많은 iPhone들이 중첩되고 늘어나면서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상호 충돌되는 엄청난 양의 견해들로 전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메갈리아 로고를 담은 작은 스크린에 나란히 있는 대형 스크린에 눈에 띄는 질문이 올려 있다. ‘당신은 김치 여자인가요?’이것은 온라인 상으로 차별적인 정서와 슬로건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인터넷 포럼인 디씨 인사이드 (DC Inside)는 한국에서의 중동 호흡기 증후군 (MERS)의 발생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포럼으로 MERS 갤러리를 출범시켰다. 그 사이트에 홍콩 쇼핑 여행 갔다가 방역을 거부한 두 명의 한국 여성이 중동 호흡기 증후군에 감염되었다는 허위 소문이 게재되었다. 그 이후로 김치녀 혹은 ‘김치 여자’는 깊이 없는 피상적인 여성의 전형을 영구적으로 만듦으로써 여성을 비하할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선우훈의 작품은 정확한 정보를 위해 인터넷에 통제 없이 의존하는 것과 관련하여 주의를 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국의 기술 수용에 대해 보다 다면적인 논평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Flat is the New Deep > 작품에 선우훈이 포함시키고 있는 또 다른 사건은 2008년의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관련 군중 시위 사건이다. 미국산 소고기에서 광우병이 검출되었던 2003년 이래 시행된 미국산 소고기 수입 금지 조치 폐지를 전환한 정부의 정책에 백 만 명의 한국 군중이 항거하는 것이었다. 이 군중 시위 집회는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한국의 십 대 연령의 젊은이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민주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서의 온라인 플랫폼의 가치를 확인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시위 참여자들의 주장이 과학적인 근거가 취약하고 정부나 주류 디미어에서 사실 확인을 하기 전에 소문이 이미 뿌리를 내렸다는 점에서 소셜미디어의 용도에 대해 정부 당국과 미디어 평론가들은 비판적이었다. 결국은 문화 방송 (MBC)은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으로부터 정말 안전한가?”라는 제목으로 2009년 4월 27일에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는데 이 방송이 대규모 군중 시위를 촉발하였다. 한국 정부 농산부의 고발로 한국의 중앙 검찰청은 수사팀을 구성하여 미국산 소고기가 BSE (소의 뇌질병)에 감염되었다는 미디어 프로그램의 주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였고 이러한 주장이 과학적으로 사실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선우훈은 본 사건을 표현함으로써 기술이 유포시키고 전달시키는 허위 정보의 현대 후기진실 패러다임 (Post-truth paradigm)을 알린 것인데, 이러한 패러다임은 성공적인 민주주의를 위한 필요 조건으로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의 불안정 상태를 초래하는 것이다.
사람들과 참여와 정치라는 복합적인 삼요소체계에 있어서 선우훈의 웹툰 속의 개인은 군중과 집단에 의해 흡수된 익명의 개인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인터넷이 개인을 물리적으로 세분화시키는 반면, 인터넷을 또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균등화시킨다. . 선우훈의 ‘평면화’는 개인과 집단이 담합하고 충돌하면서 가짜 뉴스와 집단 사고가 확산되어 가는 것을 상징한다. 그의 웹툰은 아래로 향해 나아가고 우리의 현대 시점으로 접근하면서 빌딩들 사이의 공간이 압축된다. 이는 정치적인 논의의 여지가 줄어들고 근시안적 시각의 여지가 더욱 늘어난다는 아이디어를 직설적으로나 비유적으로 환기시키는 것이다. 사회화의 패턴들은 이러한 대안의 세계에서 확대되지는 않을지라도 복제된다. 선우훈의 말을 빌리자면, ‘인터넷의 역사는 세계사와 유사합니다. 거기에서 사람들의 행동은 사람들이 상호 갈등 속에 있고, 투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만일 궁극적으로 규모가 국가적인 규모로 확대되는 경우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조직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광화문이 상상의 경계나 물질적 경계를 가진 공간이고 다양한 이데올로기들을 구현시키고 등장시켰던 것처럼 신축성을 가진 사이버공간은 상호 반대되는 견해와 갈등과 불일치의 늪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영역들의 무한성에 새로운 커뮤니티와 장벽과 경계를 쌓고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계량화가 불가능하고 투과성이 큰 대상을 어떻게 규제할 수 있겠는가? 대중의 기억은 특정 집단들의 묘사와 정체성을 차례차례 구축시켜주는 행사 의식들과 박물관들과 조각물과 기념비와 국경일들에 의해서 형성된다. 오늘날 이러한 집단들은 온라인에 존재한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의 민주화를 초래하며 개인적이며 개별적인 자서전적 기억들에 특권을 부여하면서 그러한 기억들을 기록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들의 트윗과 텍스트와 페이스북 메시지들은 서버들에 기록되고 저장되며 우리의 디지털 활동과 의사소통의 기록 (Digital footprints)들은 화폐화 된다. 특정 사건에 의해 다른 시대들과 구별되는 시대나 중요한 사건과 변화가 발생한 시대의 기술적 진보는 불가피하게 역사와 기억을 변형시킨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유적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디지털 상호작용들은 기호학적 판독 (Semiotic readings)의 영향을 받는다. 디지털 상호작용들은 그 안에 내포된 복잡하고 가변적인 메시지에 대해서 선우훈과 같은 예술가들과 역사가들의 해독과 분해와 해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선우훈의 <The Flat is the New Deep (2018)>은 2019년 6월 28일부터 8월 4일까지 기간 중 퍼에이 현대 아시아 미술관 (4A Centre for Contemporary Asian Art) 에서 <보이지 않는 손 (The Invisible Hand)> 프로그램의 일부로 전시되었다.
Notes
주석 사항
(1) Pierre Nora, ‘General Introduction: Between Memory and History,’ in Realms of Memory, trans. Arthur Goldhamme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6), 18.
(2) ‘Webtoon makers leaving Korea for US, Japan,’ The Korea Times, 1 August 2018.
(3) Sunwoo Hoon in conversation with the author, Sydney, July 2019. All other quotes from Hoon from this source.
(4) Akamai’s [State of the Internet] Q1 2017 Report.
(5) Jennifer M. Kang, ‘Just another platform for television? The emerging web dramas as digital culture in Korea,’ Media, Culture and Society 39:5 (2017) 762–772.
(6) ‘South Korean women turn out in their thousands to protest against widespread spycam porn crimes,’ The Telegraph, 7 July 2018.
About the contributor
심 수민 (Soo-Min Shim) is an arts writer living and working on stolen Ngunnawal and Ngambri land.